한국이 낳은 21C의 자랑스런 세계적인 지휘자 '이혜령 씨'의 신앙(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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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제가 독일에서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며 살아야 합니다"
Detmold 국립극장 최초(한국)여성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이혜령씨는 최근 독일 Nordwestdeutsch(노르트베스트도이취)오케스트라와 드보르작 심포니 9번 '신세계'를 훌륭하게 지휘했다. 이날 이혜령 씨는 탁월한 몸동작과 세련된 손짓으로 다이나믹을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그녀만의 프레이즈 표현은 이 오케스트라와 청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했고 자신의 끼를 한껏 뽐냈다. 이어 이혜령씨의 학.경력 및 신앙간증을 소개 하고자 한다.
▶ 이혜령 씨 프로필
-인명여자고등학교 3년 졸업
-수원대학교 피아노과 학사. 석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오페라코치과 아티스디플롬
-전 국립오페라단 피아니스트
-프랑스 Musicale de Fontenay le Comte 아카데미 수료
-Detmold 국립음대 지휘과 만점졸업
-Bad Driburg Stadtkapelle 최초여성지휘자 역임
-현 Detmold 국립국장 최초여성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 이혜령 씨는 자신이 지나온 그동안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증했다.
저는 다른 음악전공자처럼 음악을 배운 것은 아닙니다.
어렸을 때 그저 남들처럼 취미생활로 피아노를 배우고,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더이상 배울 수 없어 학원도 그만두어야 했지요. 그것은 어머니가 사업하던 천안 아파트 현장이 부도가 난겁니다. 어머니의 전 재산이 사업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때부터 피아노 레슨도 못 받게 되었지요. 그래서 저는 동네교회에 가서 추운 겨울에 손 얼어가며 연습을 하게 되었고 그 후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답니다.
처음엔 대학교를 붙었다는 기쁨 속에 학업에 충실하기보다는 마냥 친구들과 놀고 신앙생활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마술피리'라는 오페라 피아노 반주자가 되었는데, 그때 오페라의 매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와의 싸움을 견뎌야하는 피아노 전공과는 달리 오페라는 종합예술로써 성악가, 연출가 등 여러분야의 사람들과 다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기쁜 일인지를 알게 되었지요.
그 때부터 음악의 참된 매력을 느끼고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오페라코치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국립오페라단의 피아니스트가 되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경험과 인맥을 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학 나오신 많은 선생님들께 이런저런 충고와 조언을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유학길을 생각하고 독일 오페라극장 취직을 목표로 하고 있을 때쯤, 독일에서 지휘를 배우면 극장취직에 훨씬 유리하다는 정보를 알고, 지휘의 기초만 조금 배워 2012년 2월 독일로 유학을 갔고 그 해 7월 데트몰트 국립음대 지휘과에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빠른 합격이 결코 감사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5개월만에 덜컥 합격하였으니 그동안 배웠던 짧은 독일어만으로 학교생활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거기다 기초만 배웠던 지휘실력으로 독일에서 학업을 배운다는게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1,2년동안은 정말 힘든 유학생활이었습니다.
언어가 부족해 한쪽에 숨어 울기도 수없이 많이 했습니다. 참으로 외롭고 고독한 유학생활 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주저할수도, 포기할수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저를 믿어주시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응원이 있기에, 다시한번 정신을 차리고 학업생활에 정진을 해야했고, 다행히 적응속도는 상상외로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유학생활에 많이 익숙해지고 적응이 될 무렵 저에게 또 다시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그때가 2014년 10월쯤 어머니의 사업이 또 다시 힘들어져 더이상 지원이 어려워지게 되자, 저는 학업을 접고 한국에 귀국해야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쉽지만 마음을 접고 이래저래 상황을 정리하는 중, 뜻밖에 데트몰트 국립극장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피아니스트 한명이 수술을 하여 급하게 임시피아니스트를 찾는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저는 갑작스럽게 임시피아니스트가 되어 다행히 독일에 머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극장에서 공식적으로 오디션 공고를 걸었고, 저는 당당하게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여성 최초로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 데트몰트 국립음대에 재학 중인 지휘자 이혜령은 독일
Nordwestdeutsch(노르트베스트도이취) 오케스트라와 드보르작
심포니 9번 '신세계'를 훌륭하게 지휘했다.

▲ 현지 독일 각 언론에서도 보도를 통해 이혜령씨의 뛰어난 지휘실력을 극찬했다.
그 때 저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운이 좋지?
왜 오페라가 좋아졌지?
왜 지휘를 하게 되었지?
왜 유학길에 올랐지?
왜 어머니 사업이 실패했을 때 때마침 극장에서 전화가 왔지?
그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어머니의 기도!! (이혜령씨는 하늘빛세계선교총회 총회장을 맡고있는 고영선 목사의 장녀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
제 삶 속에 성령님이 함께 하시고 저를 인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음은 제 뜻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때, 큰 감명과 회개가 동시에 터져 나왔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가까이 할 때나 멀리 할 때나, 그 분은 언제나 제 곁에 계셨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속에 제가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제가 독일에서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는 이제, 제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제게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복음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